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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정보

[비틀즈] 비틀즈의 역사를 알아보자 1편!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션인 비틀즈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비틀즈는 1960년에 리버풀에서 결성된 영국의 록 밴드입니다. 멤버로는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이렇게 4명으로 구성됩니다. 활동 시기는 1960년부터 시작되어 1970년에 은퇴를 선언했지만 현재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그룹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비틀즈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비틀즈는 1957년 16세의 존 레논이 친구들과 함께 음악 그룹을 결성하면서 시작되게 됩니다. 처음 밴드 이름을 블랙 잭스라고 지었는데 같은 이름의 밴드가 있는 터라 학교 이름인 쿼리 뱅크 그래머 스쿨의 이름을 따서 쿼리맨으로 바꿔서 활동하게 됩니다. 1957년 겨울 15세였던 폴 매카트니가 합류하게 됩니다. 1958년 폴 매카트니가 해리슨을 공연에 초대하게 되었고 14세였던 조지 해리슨은 밴드에 들어가고 싶어 오디션을 봅니다. 하지만 존이 너무 어리다고 판단하고 거부했으나 몇 달 동안 멤버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졸라서 이 밴드에 합류하게 됩니다. 이후 존은 리버풀 예술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초기 밴드 멤버들은 모두 그룹을 떠났고 존, 폴, 조지만 자니 앤 더 문독이라는 밴드명으로 함께하게 됩니다. 1960년 존의 대학 친구인 스튜어트 섯 클리프가 베이스로 합류하게 되고 밴드 이름을 버디 홀리와 크리켓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비탈즈로 바꾸자고 제안해서 비탈즈로 활동을 하다가 1960년 8월 중순에 현재의 이름인 비틀즈라는 이름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이때 비공식적으로 매니저 활동을 하던 앨런 윌리엄스는 드러머인 피트 베스트를 합류시키고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클럽의 주인인 브루노 코슈미더와 계약시킵니다. 비틀즈의 멤버인 5명은 코슈미더의 클럽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원래는 스트립 클럽이었지만 음악 클럽으로 바꾸고 영업을 했는데 소음으로 인한 민원 때문에 클럽 하나가 문을 닫고 다른 클럽에서 공연을 하게 됩니다. 비틀즈가 라이벌 클럽에서 출연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브루노 코슈미더는 선수를 쳐서 계약을 해지하고 조지를 미성년자 불법체류자로 신고하여 추방을 시킵니다. 이외에도 코슈미더의 계략으로 인해 매카트니와 베스트도 추방되게 됩니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음악을 그만두고 약혼자인 아스트리드 커쳐와 함께 하기로 결정하고 함부르크에 남게 됩니다.

 

 

스튜어트의 약혼자인 커쳐는 비틀즈를 찍은 첫 사진가로 남게 됩니다. 비틀즈는 이후 2년 동안 함부르크에서 머물면서 활동을 했고 1961년에 섯클리프는 밴드를 떠나서 다시 미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폴이 베이스를 맡게 됩니다. 비틀즈는 여기저기서 활동하다가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눈에 띄게 되고 엡스타인은 비틀즈를 설득하여 정식 매니저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엡스타인은 비틀즈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난 그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들은 신선하고, 정직했으며, 내가 생각하는 일종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스타가 될 수준이었다." 매니저가 된 엡스타인은 이전에 비틀즈가 계약을 맺었던 회사와 계약을 파기하려고 노력하였고 다른 곳과 계약하고 음반을 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엡스타인의 노력으로 1962년 1월 데카 레코드에서 오디션을 봤지만 기타 그룹은 시대가 지났다는 이유로 탈락하게 되고, 3개월 후 팔로폰 레코드에서 오디션을 보고 계약을 맺게 됩니다. 팔로폰 레코드의 녹음 기술자 조지 마틴은 처음 비틀즈와의 녹음에서 베스트의 드럼 연주가 형편없으니 세션 드러머를 쓰자고 제안하고 베스트를 해고하고 링고 스타를 영입하게 됩니다. 마틴은 링고 스타도 만족하지 못하고 앤디 화이트를 고용하여 'Love Me do', 'Please Please Me', P.S I Love You'를 녹음합니다. 처음엔 마틴은 링고가 드럼을 친 'Love Me Do'를 선택했다가 앤디 화이트가 드럼을 친 음반을 다시 내놓았고 이는 차트에서 17위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차트에 진입하고 난 후 비틀즈의 첫 텔레비전 출연을 하게 되고 지역 뉴스 프로그램인 피플 앤 프레이스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틴은 'Pease Please Me'를 좀 더 빠르게 박자를 바꿔서 녹음하자고 하여 재녹음을 진행합니다. 이 곡은 비틀즈에게 처음으로 차트 1위의 영광을 안겨주게 됩니다. 비틀즈는 보컬을 잘하지 못하는 링고 스타까지 포함해 모든 구성원이 보컬을 할 것을 약속하고 엡스타인은 비틀즈을 더욱 키우기 위해 공연을 할 때 용모를 바르게 하고 행동도 제한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비틀즈는 'Pease Please Me'에서 확실한 성공을 거두었고 1963년 런던의 모든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1963년 2월 비틀즈는 지금까지의 싱글곡들을 포함하여 10곡을 녹음하여 정규앨범을 발매하게 됩니다.